강릉향교 江陵鄕校 Gangreung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인 강릉향교는 9월 25일 포항에서 평창을 가며 평해향교 - 울진향교 - 삼척향교 - 동해향교를 경유하며 마지막으로 들렸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상주하고 계시던 김남철 사무국장님께서 안내해 주셨다. 강릉향교는 역사가 있는 건물로 가장 잘 정제된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방식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는 향교의 규범이 되는 향교이다. 한국전쟁 때에도 건물이 불타지 않아 옛 규모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강릉향교 명륜당과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은 2020년 12월 29일 보물로 지정됐다.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각 지방에 설치된 국립 교육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재사와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다. 강릉향교는 1313년인 고려 충선왕 5년에 강릉존무사 김승인이 화부산 아래에 창건하였다. 조선 태종 11년인 1411년에 불에 타 없어졌던 것올 2년 뒤에 판관 이맹상의 발의로 다시 세웠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는데, 한국전쟁 때에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1909년에 화산학교를 설럽하여 신학문을 교육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강릉농업학교를 비롯하여 초 . 중 • 고 6개교를 명륜당에서 개교시켰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초정일에 석전대제를 거행하고 있다.강릉향교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오성. 공문십철 송조육현을 봉안한 대성전과 우리나라의 18선현과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를 봉안한 동무와 서무가 있고, 강론율 하던 명륜당과 유생들이 기숙을 하던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건물이 있다. 이 중 대성전은 보물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릉향교 안내문 참조
강릉향교의 동쪽 협문과 진학문
보물 제2088호로 지정된 강릉향교 명륜당은 정면 11칸,옆면 2칸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는 맞배지붕의 건물로 전국 향교 명륜당 중 가장 큰 규모의 누각형 건물이다. 일반 향교와는 달리 누각 문루형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조선 초기 문루에서 명륜당으로 정착되는 과정의 과도기 형태로 남아있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명륜당 편액의 글씨는 주희(朱熹)의 글씨로 밝혀져 서울 문묘 명륜당보다 400여년 정도 앞선 시대의 글씨로 확인되었다.
김남철 사무국장님의 안내로 먼저 살펴본 동재는 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강릉향교의 오래된 역사가 그대로 보관 전시되어 있었다.
동재를 나가면 좌측으로 9칸 규모의 명륜당이 나오고 잘가꾸어진 정원을 사이에 두고 동재와 서재가 그리고 제향영역이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명륜당의 현판들
강릉향교 서재
2020년 12월 29일 보물 제2089호로 지정된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강릉향교 대성전의 일곽에 해당하는 건물로 향교건축의 전형을 담고 있다.
향교는 국가에서 세운 지방 교육 기관이며, 대성전은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대부분의 향교에서는 공자와 4성(안자. 중자. 자사. 명자), 우리나라 18현올 포함한 39현의 위패를 모시지만, 강릉향교는중국의 역대 성현 94명올 포함해 총 136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위패는 대성전과 동무와 서무에 나누어 모셨다.대성전 앞에는 강의실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단순하지만 절제된 힘이 느껴지며, 의식을 치르는 공간인 향교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대성전의 엄중한 분위기는 성현의 가르침올 배우고 몸소 실천하려던 선비들의 마음가짐을 잘 반영하고 있다.
강릉향교 안내문 참조
강릉향교 대성전과 동무와 서무
강릉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21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강릉향교 동무에 모셔진 위패 동무(東)에는 58명, 서무(西)에는 57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강릉향교 서무
강릉향교 재방 서재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천운정사자리에 세워진 명륜문화관
강릉명륜고등학교
강릉향교 칠백년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