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포항에서 평창 알펜시아스키점프센터를 가며 평해향교 - 울진향교 - 삼척향교 - 동해향교를 경유하는데 하루 종일 비가 왔었는데 29일 태안에 취재차 들렸다가 오는 길에 태안향교와 해미향교를 들렸는데 이날도 가는 곳마다 비가 내린다. 그러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국의 향교 탐방은 계속 된다.
2021년 9월 29일 방문했다.
태안향교 泰安鄕校
태안향교(충청남도 기념물 제139호)는 문이 닫혀 있었으나 유림회관에 들려보니 명륜서실에서 서예교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태안향교의 명륜서실의 이성선 장의가 2019년 성균관서예대전에서 한글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고 한다. 윤경상 전교님께서 향교를 안내를 해주셨다.
태안향교는 태안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던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고려 때부터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으로 조선 시대에는 전국의 모든 고을에 세워졌다. 향교를 통해 유교를 알리고 인재를 길러야 했으므로 나라에서 향교에 땅과 노비, 책 등을 주었고, 고을의 수령이 정성껏 관리하였다. 태안향교는 공자 등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학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던 명륜당, 학생들이 거주하는 동재 • 서재로 이루어져 있다.태안향교가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초까지만 해도 ‘몇 칸의 초가집’ 이 전부였을 만큼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1407년(태종7) 사양동에 사당을 새로 세웠다. 그 후 향교 자리에서 뱀과 호랑이가 나타나 현 태안중학교 자리로 옮겼는데 화재로 불타 버리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향교의 대들보 상량문을 보면 1720년(숙종46)에 건물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향교에서는 유교 경전과 역사를 배우고 글쓰기도 익혔다. 천민만 아니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양반이 독차지했고, 태안향교의 학생 정원은 30명에서 점차 늘어 50 명까지 되었다.향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라는 큰 제례를 올린다. 태안향교는 제례와 함께 유림의 날 행사를 진행하여 유교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태안향교 안내문
태안향교는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앞에두고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뒤에 두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방식으로 지어져 있다.
태안향교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태안향교 서재
태안향교 서재
태안향교 서재
명륜당과 서재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제기고이다.
태안향교 내삼문
태안향교 내삼문
태안향교 대성전
대성전 좌우측에 있던 동무와 서무는 남아 있지 않다.
태안향교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태안향교 보호수 361호 은행나무(사진 우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