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정읍 무성서원
무성서원은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돈암서원과 함께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일람표에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됐다.<사진제공 임영식>
무성서원은 신라말(886년) 태산태수로 부임하여 8년간 선정을 베푼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는 표시로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백성들이 제사 지내는 사당)을 세운데서 유래하였다.
1615년 건립하여 태산서원이라 했는데 1696년(숙종 22) 무성서원이라 사액되었다. 무성서원은 예(禮)와 악(樂)으로 백성을 교화한 선비문화의 중심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데, 자연 경관 속에 입지한 다른 서원과는 다르게 마을 속에 위치하여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서원의 보존과 운영에 참여해 왔다는데 특징을 보이고 있다.
무성서원은 19세기 말 정부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아니한 전라북도 내 유일한 서원으로 고운 최치원 선생, 「상춘곡」을 지은 불우헌 정극인 선생 등 이 지역에서 성리학을 보급하고 학문을 장려한 7분을 배향하고 있다. 특히, 무성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향약인 고현동향약을 시행하였으며,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이에 항거하여 1906년 면암 최익현을 맹주로 호남 최초의 의병을 창의한 역사적 현장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무성서원 비석군
무성서원은 외삼문이 없고 전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인 현가루가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1891년에 세워진 현가루는 칠보8경 중 제3경 무성현가(武城絃歌 무성현의 현가루에서 글 읽는 소리)로 소개되어 있다.
강수재는 유생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원래는 동쪽 기숙사인 강수재와 서쪽 기숙사인 흥학재가 있었으나 현재는 강수재만 남아 있다. 강수재는 숙종 22년(1696) 사액후에 고직사를 기숙사로 변경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24년(1887)에 세워진 것으로 이후에 여러번 수리하였다.
무성서원 강당
무성서원 강당은 교육공간으로 성종 6년(1475) 불우헌 정극인이 향악을 창설하면서 세운 행학당에서 유래한다. 광해군 7년(1615)에 태산서원(무성서원의 옛이름)을 창건할 당시에는 현재와는 규모와 형태가 다른 강당 역할을 하는 건물이 있었으나 1825년에 큰불이 나서 사라져버렸다. 그 후 1828년 태인 현감 서호순의 도움으로 다시 세워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제향영역은 서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중 하나인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무성서원 태산사
내삼문을 들어서면 신라 말 태산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배풀었던 최치원외 6현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생사당(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는 표시로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백성들이 제사 지내느 사당) 태산사가 있다. 무성서원의 향사는 매년 2월 중정일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냈으나, 현재는 2월 중정일에 한번 지내며 향사절차는 무성서원 원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강당 왼쪽의 통로로 나가면 비각영역이 나온다. 비각영역에는 신용희 불망비와 서호순 불망비가 있고 무성서원에는 강수재 서남측면에 2개의 비각이 더 있다. 무성서원에는 내외부에 모두 15기의 비석이 있는데 역대 현감들과 무성서원을 지켜낸 인물들에 대한 공적비가 대부분이다.
신용희 불망비
신용희 불망비는 1925년에 세운 것으로 비신에는 통정대부 전비서감승 (通政大夫 前秘書監丞) 신용희(申瑢熙) 불망비라 새겨 져있으며 규모는 높이 1.16 m 폭 0.45m. 두께 0.18m이다.
서호순 불망비는 1849년 철종 즉위년에 세운 것으로 비면에 현감 서호순 불망비라 새겨져 있으며 규모는 높이 1,23m, vhrdms 0.36m, 두께 0.16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