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죽주산성과 송문주장군
안성 골프클럽Q 티업시간이 2시간 이상 남아있어 안성의 가볼만한 곳을 찾다가 인근에 있는 죽주산성과 칠장사를 들려보았다.
죽주는 고려시대 죽산지역의 지명으로 이곳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영남길 교통의 요지이다. 이 성은 죽주성 또는 매성으로 불렸으며 몽고군과 치열한 전투가 펼쳐진 곳인데,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여 몽고침략 때와 임진왜란 때 다시 쌓았다. 성벽은 내성,중성,외성의 3중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외성만이 원래의 성벽이 남아 있고 내성과 중성은 많은 보수를 하였다. 그러나 중성 역시 성벽의 하부구조는 아직도 삼국시대 모습이 상당 부분 남아있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5년 조선왕조실록에는 일본성을 모방하여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남쪽 성벽의 동쪽과 서쪽 끝의 치성(雄城)부분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성 바깥에는 도랑(마른 해자,외황)의 흔적이 있으며, 북문 옆에는 네모진 주춧돌과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어 건물이 있었 음을 알 수 있다.
죽주산성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산106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산성으로 경기도 기념물 제69호이다.
고려 고종 23년(1236) 몽고군이 이곳 죽주산성에 이르러 고려군에게 항복을 강요하면서 공격하였으나 송문주(宋文富)장군이 막아냈다. 이때 성을 지킨 죽주방호별감(竹州防護別監)송문주 장군은 일찍이 구주성 (繼州城)싸움에서 몽고군의 공격법을 알고 대비하였기에 이길수 있었고, 이에 백성들은 그를 '신명(神明)’ 이라 불렀다. 성안에는 송문주 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채제공이 쓴 송장군묘비명(宋將軍廟碑銘》에는, 몽고군이 죽주산성을 둘러 싸고 물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전술을 쓰자 장군은 “멀리서 왔으니 어찌 배고프지 않겠는가! 삼가 이 생선으로 군량을 삼으라!” 하며 연못의 잉어를 잡아 적에게 보냈고,이에 크게 놀라 적이 물러가니 뒤쫓아 무찔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의 평탄지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신라시대 집수시설 6기와 조선시대 집수시설 2기가 발견 되었는데,이는 죽주산성이 예로부터 물이 풍부한 성이었으며 이러한 기록이 진실임을 밝혀주는 증거가 된다.
첨부된 죽주산성의 사진들은 중성동문지와 중성동남치성의 모습들이다. 주차장에서 처음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성벽을 따라 전망이 좋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바로 칠장사로 향했다.
죽산삼거리를 지나다보면 우측에는 고려말 대몽항쟁시기 현재 죽산면 주민들과 힘을 합쳐 죽주산성에서 몽골군을 물리친 역사적 인물인 송문주장군상이 있다.
죽산삼거리 송문주장군 동상